BIBLE HOMES예슈아 직역성경

성경 해설 · 편집자의 말

번역 후기

예슈아 직역성경(YLV) — 직역의 정신과 더 나은 번역을 향한 초대


I.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성경이 오늘 우리 손에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각고의 노력과 숭고한 헌신으로, 때로는 순교로써 성경을 자국어로 옮기는 사명을 감당해 왔다. 제롬의 라틴어 불가타, 루터의 독일어 성경, 틴들의 영어 번역, 그리고 우리말로 처음 성경을 전한 선교사들과 조선의 신앙인들 —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와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없다.

본 번역은 이 모든 선배들의 헌신이 쌓아 온 거대한 유산 위에서 출발했다. 그들을 비판하거나 그들의 수고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켜 놓은 횃불을 손에 받아, 오늘의 언어 과학과 기술로 원문에 더 가까이, 더 충실하게 나아갔다. 이것이 본 번역이 시작된 이유다.

모든 시대의 번역은 그 시대의 도구와 지식 위에서 이루어졌다. 본 번역은 오늘의 언어 과학과 원전 연구가 허락하는 가장 정밀한 도구로, 그 어느 때보다 원문에 충실하게 나아간 직역이다. 이 일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견고한 헌신의 출발점이다.

II. 구약성경 직역 — 사해사본과 원전을 따라

본 번역은 신약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약성경 또한 동일한 직역의 정신으로 옮기고 있다. 구약은 마소라 레닌그라드 사본(Masoretic Leningrad Codex)을 완전 직역하되, 사해사본(Dead Sea Scrolls)과 다른 구절들에는 "사해사본 우선 원칙"을 적용하여, 오랜 전승의 층 아래 가려졌던 원전에 더 가까이 나아갔다.

가장 분명한 예가 시편 22편 17절(전통 번역의 16절)이다. 전통적 마소라 본문은 "사자같이 내 손과 발을"로 읽지만, 사해사본은 "그들이 내 손과 발을 뚫었다(카아루, כָּאֲרוּ)"로 증거한다. 본 번역은 이 사해사본의 독법을 따라 "그들이 내 손과 발을 뚫었다"로 옮겼다. 다윗이 천 년 전에 기록한 메시아 예슈아의 십자가 복음이, 성경 본문 그대로 정확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또한 본 번역의 구약은 원전의 절 구분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전통적 번역본과 몇몇 군데에서 절 번호가 다르다. 이는 오류가 아니라, 원문을 있는 그대로 따른 결과다.

III. 성경의 내적 일관성 —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본 번역이 추구한 직역의 궁극적 목적은 성경의 내적 일관성(internal coherence)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모에딤이라는 개념은 창세기 1:14에서 출발하여, 창세기 17:21, 18:14, 21:2의 언약의 성취(모에드, 정하신 때)를 보여주고, 토라를 거쳐 다니엘 7:25의 아람어 idan, idanin, 다니엘 12:7의 히브리어 mo'ed, mo'edim, 그리고 요한계시록 12:14의 헬라어 kairon, kairous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적 실(thread)로 기능한다. 이 일관성은 직역을 통해서만 온전히 독자의 눈앞에 펼쳐질 수 있다고 믿었다.

IV. 직역(直譯)의 정신 — 원문에 더 가까이

성경 번역의 역사는 언제나 두 가지 긴장 사이에서 형성되어 왔다. 하나는 원문(原文)에 대한 충실성이요, 다른 하나는 독자의 가독성이다. 독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성경을 전달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귀하고 옳다. 그러나 동시에, 원문이 담고 있는 사상적·신학적 구조가 번역 과정에서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번역을 마친 지금, 더욱 깊이 실감한다.

본 번역은 Byzantine RP2018 헬라어 본문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원어의 어휘·문법·문맥 구조를 가능한 한 그대로 한국어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를 우리는 '직역(直譯, Direct Translation)'이라 부른다. 이 직역은 단순한 문자적 번역을 넘어, 원어가 지닌 신학적 함의와 성경 전체의 내적 일관성을 보존하고자 한 학문적 시도였다.

V. 음역 병기(音譯倂記) — 원어의 깊이를 독자 곁으로

헬라어 원문에는 단일한 번역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어휘들이 다수 존재한다. 예컨대 카르디아(καρδία)는 문맥에 따라 마음, 심장, 혼적 영역을 동시에 지칭하는데, 이를 '마음' 하나로 번역하면 그 신학적 층위가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 에피그노시스(ἐπίγνωσις)는 단순한 지식인 그노시스(γνῶσις)와 구별되는 신령하고 온전한 앎의 차원을 가지며, 비블로스(βίβλος)는 문맥에 따라 두루마리일 수도, 책일 수도, 문서일 수도 있다. 로고스(λόγος)는 인격적 칭호(요 1:1)로 쓰이기도 하고, 복음의 메시지, 논증의 근거, 혹은 일반적 발화를 뜻하기도 한다.

본 번역은 이러한 어휘들을 '헬라어음역(한국어뜻)' 형식으로 병기했다. 이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원어의 소리와 의미를 동시에 인식하게 함으로써, 번역어만으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원문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VI. 직역이 드러내는 것들 — 몇 가지 사례

직역의 유익은 구체적인 본문에서 비로소 실감된다. 갈라디아서 4:10에서 헬라어 동사 παρατηρέω(파라테레오)는 신약성경의 다른 모든 용례에서 공통적으로 '적대적 의도를 가지고 감시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마가복음 3:2에서 서기관들이 예슈아(예수)를 고발하기 위해, 누가복음 6:7에서 고발거리를 찾기 위해, 사도행전 9:24에서 사울을 해하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감시하는 데 쓰인 바로 그 단어이다.

"너희가 날과 달과 카이로스(정해진-때)와 해를 파라테레오(적대적으로 감시하여 없애려 한다)." — 갈라디아서 4:10

또한 요한복음 21:15-17에서 예슈아(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두 번은 아가페(ἀγάπη, 무조건적 사랑)로 물으시고, 세 번째는 필레오(φιλέω, 친구로서의 사랑)로 물으시는 장면이 있다. 베드로는 세 번 모두 필레오로 대답한다.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살리는 것이 직역이며, 그것이 이 본문이 담고 있는 신학적 드라마이다.

VII. 기술의 발전과 함께 — 더 나은 번역을 향하여

우리는 지금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다. 언어 과학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원문 분석과 번역의 정밀성을 이전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본 번역은 바로 이 시대의 도구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완성되었다.

본 번역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직역을 발판 삼아, 더 많은 언어와 세대 속에서 원문에 충실한 직역이 굳건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VIII. 고귀한 사명으로의 초대

세례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다. 길을 예비하는 자였다. 본 번역도 그러한 마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 원문의 진실로 곧장 길을 내는 소리이기를 원한다.

번역은 혼자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연구와 헌신이 모여 한 세대의 번역을 이루고, 그것이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보다 앞서 걸어간 모든 신앙의 선배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우리보다 뒤에 올 모든 번역자들에게 이 시작을 기꺼이 이어 드린다.

Byzantine RP2018 Greek New Testament · 예슈아직역(YLV) 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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